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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918년 – 1392년

Goryeo in English ↓

고려는 918년 왕건이 세우고 936년 후삼국을 다시 통일한 뒤 1392년까지 이어진 나라입니다. 오늘날 영어 이름 Korea가 '고려'에서 나왔을 만큼 바깥 세계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거란·여진·몽골 같은 북방 민족과 맞서 싸우고, 송과 일본, 멀리 아라비아 상인과도 교역하며, 청자와 대장경, 금속 활자 같은 문화를 남겼습니다.

한눈에 보기

기간918년 ~ 1392년 (후삼국 통일은 936년)
도읍개경(지금의 개성). 몽골과 싸우던 1232년부터 1270년까지는 강화도
이웃 나라거란(요), 여진(금), 송, 몽골(원), 명, 일본
퀴즈 지도1050년 무렵의 고려와 거란(요)·여진, 탐라

역사의 흐름

후삼국 통일과 나라의 기틀

태조 왕건은 지방 호족들과 혼인 관계를 맺고 그들을 감싸 안으며 나라를 안정시켰습니다. 고구려를 잇는다는 뜻으로 나라 이름을 고려라 하고, 옛 고구려 땅을 되찾으려 북쪽으로 영토를 넓혔습니다(북진 정책). 발해가 멸망하자 그 유민도 받아들였습니다. 광종은 노비안검법(956년)으로 호족의 힘을 누르고 과거 제도(958년)를 시행했으며, 성종은 최승로의 건의를 받아들여 유교 정치의 틀과 지방 제도를 갖추었습니다.

거란·여진과의 전쟁

10세기 말부터 거란(요)이 세 차례 고려를 쳐들어왔습니다. 993년 1차 침입 때 서희는 거란 장수와 담판을 벌여 오히려 압록강 동쪽의 강동 6주를 얻어 냈고, 1018년 3차 침입 때 강감찬은 이듬해 귀주에서 거란군을 크게 무찔렀습니다(귀주 대첩, 1019년). 고려는 그 뒤 압록강 어귀에서 동해안 도련포까지 천리장성을 쌓아(1033~1044년) 북쪽을 지켰습니다.

12세기 초 여진이 강해지자 윤관은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을 몰아낸 뒤 동북 지방에 9성을 쌓았지만(1107~1108년), 여진의 거듭된 요청으로 곧 돌려주었습니다(1109년). 여진이 세운 금나라가 요를 무너뜨릴 만큼 강해지자, 고려는 금을 섬기라는 요구를 받아들였습니다(1126년).

문벌 귀족과 무신 정권

11~12세기에는 대대로 높은 벼슬을 차지한 문벌 귀족이 권력을 쥐었습니다. 왕의 외척 이자겸이 일으킨 난(1126년)과, 서경(평양)으로 도읍을 옮기자는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1135년)으로 나라가 크게 흔들렸습니다. 1170년에는 차별받던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켜 약 100년 동안 무신 정권이 이어졌습니다. 이 무렵 망이·망소이의 봉기와 만적의 봉기 계획처럼 신분 차별과 수탈에 맞선 백성과 노비들의 움직임도 잇따랐습니다.

몽골의 침입과 원 간섭기

1231년 몽골이 쳐들어오자 무신 정권은 이듬해 도읍을 강화도로 옮기고 오랫동안 맞섰습니다. 그동안 몽골군은 여러 차례 전국을 휩쓸었고, 백성들은 처인성과 충주성 등지에서 힘을 모아 몽골군을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부처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려는 바람을 담아 팔만대장경을 새긴 것도 이때입니다(1236~1251년). 1270년 고려 조정이 개경으로 돌아가자 삼별초는 이를 거부하고 근거지를 옮겨 가며 1273년까지 항쟁했습니다.

그 뒤 약 80년 동안 고려는 원나라의 간섭을 받았습니다. 고려 왕은 원의 공주와 혼인했고, 원은 두 차례 일본 원정(1274·1281년)에 고려의 배와 군사를 동원했습니다. 14세기 중엽 공민왕은 원이 약해진 틈을 타 반원 개혁을 펼쳐, 원이 차지하고 있던 쌍성총관부를 되찾았습니다(1356년).

고려 말과 조선의 건국

14세기 후반 고려는 북쪽에서는 홍건적, 바닷가에서는 왜구의 침입에 시달렸습니다. 최영과 이성계 같은 장수들이 이들을 물리치며 이름을 떨쳤습니다. 1388년 명나라가 철령 북쪽의 땅을 내놓으라고 하자 고려는 요동 정벌에 나섰지만, 이성계는 군대를 돌려 개경으로 돌아와 권력을 잡았습니다(위화도 회군).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들은 토지 제도를 개혁한 뒤(과전법, 1391년), 1392년 조선을 세웠습니다.

고려의 문화

고려는 불교를 크게 받들었지만 유교와 풍수지리 사상도 함께 받아들였습니다. 맑은 푸른빛으로 이름난 고려청자와, 무늬를 파내고 다른 색 흙을 메워 넣는 상감 청자, 목판 8만여 장에 새긴 팔만대장경,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 인쇄본인 『직지심체요절』(1377년)이 고려 문화를 대표합니다. 고려에는 송과 일본은 물론 멀리 아라비아 상인까지 드나들었고, 이런 교류를 통해 '고려'라는 이름이 서쪽 세계에 알려졌다고 봅니다.

지도로 보는 고려

퀴즈 지도는 이렇게 그렸습니다

고려 지도는 천리장성을 다 쌓은(1044년) 뒤인 1050년 무렵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북쪽 경계는 천리장성을 따라 압록강 어귀에서 동해안 도련포까지입니다.

고려의 북쪽 국경은 시기마다 크게 달랐습니다. 9성을 쌓았던 12세기 초, 원이 쌍성총관부와 동녕부를 두었던 13~14세기, 공민왕이 되찾은 뒤의 고려 말은 1050년 지도와 모양이 다릅니다. 기준 시점과 먼 문제에서는 국경을 위치를 찾는 바탕으로만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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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ryeo (918–1392)

Founded by Wang Geon in 918, Goryeo unified the Later Three Kingdoms in 936 and lasted until 1392; the English name "Korea" comes from it. Its capital was Gaegyeong (today's Kaesong). Early kings drew local lords into the state, and King Gwangjong introduced civil service examinations in 958. Goryeo fought off three Khitan invasions, gaining the land east of the lower Yalu by diplomacy in 993 and crushing the Khitan army at Gwiju in 1019, then built a "thousand-li wall" from the mouth of the Yalu to the east coast (1033–1044).

Aristocratic clans dominated the 11th and 12th centuries until a military coup in 1170 began a century of military rule. When the Mongols invaded in 1231, the court moved to Ganghwa Island and held out for decades while the Tripitaka Koreana was carved (1236–1251). After the court returned to Gaegyeong in 1270, Goryeo spent about 80 years under Yuan domination until King Gongmin's reforms of the 1350s. Late Goryeo fought Red Turban rebels and Japanese pirates; in 1388 the general Yi Seong-gye turned his army back from a campaign against Liaodong, seized power and founded Joseon in 1392. Goryeo celadon, the Tripitaka Koreana and Jikji (1377), the oldest surviving book printed with movable metal type, are among its legacies.

The quiz map shows Goryeo around 1050, with the thousand-li wall as its northern border and the Khitan Liao and the Jurchens beyond it. The lower Yalu is drawn as the border as in textbook maps, although the Khitans held Boju on its eastern bank until 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