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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와 건축·그림 950~1376년
상감청자와 주심포·다포 건축, 불화와 벽화에 담긴 고려 장인의 솜씨
핵심 정리
- 10세기 무렵 중국 월주요의 기술을 받아들여 시작한 고려청자는 12세기 전반 '비색'이라 불린 맑은 푸른빛으로 이름났습니다
- 무늬를 파내고 흰 흙·붉은 흙을 메워 굽는 상감청자는 고려만의 솜씨로, 강진과 부안의 가마에서 많이 구웠습니다
- 고려 후기 건축은 기둥 위에만 공포를 얹은 주심포 양식(봉정사 극락전·수덕사 대웅전·부석사 무량수전)과 원의 영향으로 들어온 다포 양식(성불사 응진전)으로 나뉩니다
- 봉정사 극락전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나무 건물로, 수덕사 대웅전(1308)은 지은 해가 확실한 가장 오래된 나무 건물로 꼽힙니다
- 원 간섭기에 화려한 고려 불화가 많이 그려졌지만 지금은 대부분 나라 밖에 있고, 거창 둔마리 무덤에는 드물게 고려 벽화가 남아 있습니다
월주요에서 배워 비색을 이루다
자기는 고운 흙으로 빚어 아주 높은 불에 구운 단단한 그릇입니다. 그 가운데 겉에 바른 유약(구우면 유리 같은 막이 되는 약)에 든 쇠 성분 때문에 푸른빛을 띠는 것이 청자입니다. 청자를 처음 구운 곳은 중국으로, 당나라와 오대(당과 송 사이의 시기) 무렵 가장 이름난 가마는 지금의 저장성에 있던 월주요였습니다. 월주요 가마터가 가장 많이 모인 곳은 상림호1라는 호수 둘레로, 당나라 말과 오대에는 황실에 바치는 귀한 청자도 이곳에서 구웠습니다.
10세기 무렵 고려에서는 절과 귀족 사이에 차를 마시는 풍습이 널리 퍼져 좋은 찻그릇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이런 바람에 맞춰 고려 장인들은 월주요의 기술을 받아들여 청자를 굽기 시작했습니다. 경기도 시흥 방산동과 황해도 배천 원산리의 초기 가마터에서는 중국식으로 벽돌을 쌓아 만든 긴 가마와 해무리굽 찻사발이 나왔습니다. 해무리굽은 그릇 밑받침인 굽이 넓은 고리 모양이어서, 해 둘레의 빛 테두리인 해무리를 닮았다는 데서 붙은 이름입니다.
그 뒤 고려 장인들은 흙으로 쌓은 가마를 쓰기 시작했고, 청자를 굽는 중심도 좋은 흙과 땔나무가 많고 바닷길로 그릇을 나르기 쉬운 남서쪽 바닷가로 옮겨 갔습니다. 12세기 전반에 이르러 고려청자는 맑고 은은한 푸른빛으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1123년 송나라 사신단을 따라 고려에 온 서긍은 이듬해 지은 『고려도경』에 고려 사람들이 청자의 푸른빛을 '비색'이라 부른다고 적었습니다. 송나라 때의 책 『수중금』도 고려의 비색을 천하제일로 꼽았습니다.
상감청자와 강진·부안의 가마
12세기 중엽 무렵 고려 장인들은 상감이라는 새 기법을 꽃피웠습니다. 상감은 덜 마른 그릇 겉에 무늬를 파낸 뒤, 그 자리에 흰 흙이나 붉은 흙을 메우고 유약을 발라 굽는 방법입니다. 구우면 흰 흙은 희게, 붉은 흙은 검게 드러나 푸른 바탕 위에 구름과 학, 버드나무와 물새 같은 무늬가 그림처럼 떠오릅니다. 청동 그릇에 은실을 박던 솜씨와 자개(조개껍데기 조각)를 붙여 꾸미던 나전 칠기의 솜씨가 바탕이 되었다고 봅니다. 중국에서도 보기 어려운 고려만의 청자였습니다.
이런 청자를 가장 많이 구운 곳이 전라남도 강진2입니다. 강진군 대구면 일대에는 고려 시대 내내 이어진 가마터 180여 기가 모여 있습니다. 그 가운데 사당리 가마터는 12~13세기 청자 전성기의 중심이었고, 상감 기법이 처음 만들어진 곳으로 이야기됩니다. 서해안의 부안 유천리3에도 가마터 약 37곳이 흩어져 있어, 강진과 함께 최고급 상감청자를 굽던 두 산지로 꼽힙니다.
강진과 부안의 청자는 배에 실려 서해 바닷길로 개경의 왕실과 귀족에게 갔습니다. 충청남도 태안 앞바다에서는 청자를 싣고 가다 가라앉은 고려의 배가 여러 척 발견되었습니다. 청자는 건물에도 쓰였습니다. 『고려사』에는 1157년 의종이 정원에 정자 여러 채를 지으며 그 가운데 양이정의 지붕을 청자 기와로 덮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964년 강진 사당리에서 청자 기와가 무더기로 나와 이 기록을 뒷받침했습니다. 그러나 원 간섭기에 들면서 청자의 빛깔과 무늬는 차츰 거칠어졌고, 14세기 왜구가 바닷가를 자주 노략질하자 가마의 장인들은 내륙으로 흩어졌습니다. 이들의 솜씨는 고려 말에 시작되어 조선 초에 유행한 분청사기(흰 흙을 발라 꾸민 그릇)로 이어졌습니다.
주심포와 다포, 고려의 나무 건물
나무 건물은 전쟁과 불에 약해서, 지금 남은 고려 건물은 대부분 13~14세기 고려 후기의 것입니다. 이 건물들은 공포를 어떻게 얹었는지에 따라 나뉩니다. 공포는 지붕의 무게를 기둥에 고르게 전하려고 지붕 밑에 나무 조각을 여러 겹 짜 맞춘 장치입니다. 기둥 바로 위에만 얹으면 주심포 양식,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얹으면 다포 양식입니다.
안동 봉정사 극락전8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건물로 꼽히는 주심포 건물입니다. 1972년 해체 수리 때 상량문, 곧 지붕 마룻대를 올리며 내력을 적은 글이 나왔는데, 1363년(공민왕 12)에 지붕을 크게 고쳤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나무 건물은 지은 지 백 년이 넘어야 지붕을 크게 고치는 일이 많아, 처음 지은 때는 12~13세기로 봅니다. 예산 수덕사 대웅전5은 해체 수리 때 나온 먹 글씨로 1308년(충렬왕 34)에 지었음이 밝혀져, 지은 해가 확실한 가장 오래된 나무 건물이 되었습니다. 옆면이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라 기둥과 들보가 짜인 모습이 옆에서 그대로 보입니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10은 1376년(우왕 2)에 다시 지었다는 기록이 남은 주심포 건물로, 기둥 가운데가 살짝 불룩한 배흘림기둥으로 이름이 높습니다. 배흘림은 곧은 기둥의 가운데가 멀리서 가늘어 보이는 눈의 착각을 바로잡아 줍니다. 절이 아닌 관아 건물로는 강릉의 임영관 삼문7이 남았습니다. 나라에서 보낸 관리와 사신이 묵던 객사의 정문으로, 주심포 양식에 맞배지붕과 배흘림기둥을 갖추었습니다. 객사의 다른 건물들은 일제 강점기에 헐려 이 문만 남았고, '임영관' 현판 글씨는 공민왕이 썼다고 전합니다.
다포 양식은 원 간섭기에 원나라 건축의 영향을 받아 들어왔습니다. 공포가 촘촘해 지붕을 크고 화려하게 꾸밀 수 있었습니다. 황해도 사리원 정방산성 안의 성불사 응진전9이 고려 후기 다포 건물의 대표로 꼽히며, 성불사는 1374년 승려 나옹이 고쳐 지었다고 전합니다. 다포 양식은 조선 시대 궁궐의 으뜸 건물인 정전과 큰 절 건물로 이어졌습니다.
불화와 벽화에 남은 붓끝
원 간섭기에는 그림에서도 고려의 솜씨가 빛났습니다. 왕실과 권문세족(이 무렵 권력을 쥔 집안들)은 죽은 뒤 극락에 가기를 빌며 부처와 보살을 그린 불화를 많이 주문했습니다. 고려 불화는 비단에 금가루와 광물에서 얻은 물감으로 그렸는데, 비단 뒷면에도 색을 칠해 앞면의 빛깔이 은은하게 배어 나오게 했습니다. 아미타불, 지장보살과 함께 즐겨 그린 것이 바닷가 바위 곁의 관음보살을 그린 수월관음도입니다.
지금 전하는 고려 불화 160여 점은 대부분 일본 등 나라 밖에 있습니다. 승려 화가 혜허가 14세기 무렵 그린 수월관음도는 일본 도쿄의 절 센소지6가 가지고 있습니다. 버들가지를 든 관음보살이 물방울 모양의 광배, 곧 몸 뒤를 감싼 빛 안에 서 있어 '물방울 관음'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림에 '해동(우리나라의 옛 이름)의 어리석은 승려 혜허'라는 겸손한 뜻의 서명이 있어, 그린 사람을 아는 드문 고려 불화로 꼽힙니다.
무덤과 절의 벽에도 그림이 남았습니다. 경상남도 거창 둔마리4에서는 돌로 짠 방 두 개를 나란히 만들고 벽에 회칠을 한 뒤, 악기를 연주하는 하늘나라 여인인 천녀 등을 그린 무덤이 나왔습니다. 13세기 후반에서 14세기 전반 사이에 만든 것으로 보며, 1971년 마을 사람이 찾아낸 뒤 이듬해 발굴되었습니다. 그림이 남은 드문 고려 무덤이라 그때의 그림과 장례 풍습을 잘 보여 줍니다. 이 밖에 부석사 조사당 벽화는 지금 남은 가장 오래된 절 벽화로 꼽힙니다.
연표
- 950년 10세기 무렵 중국 월주요의 기술을 받아들여 청자를 굽기 시작함
- 1123년 송 사신단을 따라 서긍이 고려에 옴 (이듬해 『고려도경』에 비색 청자를 적음)
- 1157년 의종이 양이정 지붕을 청자 기와로 덮음 (상감청자가 꽃피던 무렵)
- 1300년 13세기 후반~14세기 전반 무렵 거창 둔마리에 벽화 무덤을 만듦
- 1308년 예산 수덕사 대웅전을 지음 (충렬왕 34)
- 1363년 안동 봉정사 극락전의 지붕을 크게 고침 (공민왕 12)
- 1374년 나옹이 사리원 성불사를 고쳐 지었다고 전함
- 1376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을 다시 지음 (우왕 2)
이 단원의 장소
- 1
상림호(上林湖) 월주요 가마터 (중국 저장성 닝보시 츠시)
학계에서는 대체로 고려 청자가 10세기 무렵 중국 저장성 월주요의 기술을 받아들여 시작되었다고 보며, 시흥 방산동·배천 원산리 같은 초기 가마터의 벽돌 가마와 해무리굽 완을 그 증거로 꼽는다. 츠시 상림호 일대에는 후한부터 송대까지 쓰인 월주요 가마터가 100곳 넘게 모여 있고, 2015~2017년 후사오(后司岙) 가마터 발굴로 당 말·오대에 황실에 바친 비색자(秘色瓷)를 이곳에서 구웠음이 확인되었다.
- 2
강진 고려청자 요지 (대구면 사당리)
강진 대구면 일대에는 10~14세기 고려 전 시기에 걸친 청자 가마터 180여 기가 분포하며, 사당리 가마터는 12세기 전반~13세기 청자 전성기의 중심지로 상감기법이 처음 창안된 곳으로 설명된다.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사당리에 고려청자박물관이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국가유산포털 · 영어 위키백과
- 3
부안 유천리 요지 (보안면 유천리)
부안 보안면 유천리 일대에는 고려청자 가마터 약 37곳이 7개 구역에 걸쳐 흩어져 있으며, 고려 후기의 최상급 비색·상감청자를 만들어 강진 사당리와 더불어 대표적인 청자 산지로 꼽힌다. 유천리 요지는 이웃한 진서리 요지와 함께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 4
거창 둔마리 벽화 고분 (남하면 둔마리)
1971년 지역 주민이 발견해 이듬해 발굴 조사한 굴식 돌방무덤으로, 13세기 후반~14세기 전반에 만든 것으로 보며 1974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주악 천녀를 비롯한 인물 그림은 고려의 회화와 장례 풍습을 보여 주는 드문 자료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국가유산포털 · 참고 자료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목록
- 5
예산 수덕사 대웅전
1930년대 해체 수리 때 나온 묵서명에 1308년(충렬왕 34)에 세웠다고 적혀 있다. 맞배지붕에 기둥 위에만 공포를 얹은 주심포 양식 건물로, 옆면의 짜임새가 아름다워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고려 목조 건축을 대표한다.
- 6
센소지 (일본 도쿄 아사쿠사)
혜허의 수월관음도에는 '해동치납 혜허'라는 서명이 있어 그린 이가 알려진 드문 고려 불화로 꼽히며, 14세기 무렵 그려진 것으로 본다. 오늘날 전하는 고려 불화 160여 점은 대부분 일본 등 나라 밖에 있고, 이 그림은 도쿄 아사쿠사의 센소지가 소장하고 있다.
- 7
강릉 임영관 삼문 (옛 이름 강릉 객사문, 강원 강릉시 용강동)
임영관은 강릉 객사로, 『임영지』는 936년(태조 19)에 처음 지었다고 전하며 '임영관' 현판 글씨는 공민왕이 낙산사로 가던 길에 들러 쓴 것이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 객사의 다른 건물들이 헐려 이 정문만 남았으며, 절이 아닌 관아 건물로는 드물게 전하는 고려 목조 건축이다.
- 8
안동 봉정사 극락전
1972년 해체 수리 때 나온 상량문에 1363년(공민왕 12)에 지붕을 중수했다고 적혀 있어, 처음 지은 때는 그보다 앞선 12~13세기로 본다. 기둥 위에만 공포를 얹은 주심포 양식 건물이며, 봉정사는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의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 9
성불사 응진전 (황해북도 사리원 정방산성 안)
응진전은 원의 영향을 받아 들어온 다포 양식으로 지은 고려 말의 건물로, 이 양식은 조선 시대 궁궐 정전과 큰 절 건물의 주류가 되었다. 성불사는 사리원 북쪽 정방산성 안에 있는 절로, 898년 도선이 세우고 1374년 나옹 혜근이 고쳐 지었다고 전한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영어 위키백과
- 10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부석사는 676년 의상이 세운 화엄종 사찰로, 1916년 해체 수리 때 나온 묵서에 무량수전을 1376년(우왕 2)에 다시 지었다고 적혀 있다. 무량수전은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꼽히며, 부석사는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의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참고한 자료
- 『고려사』 세가 의종 11년(1157)
- 서긍, 『선화봉사고려도경』
- 태평노인, 『수중금』
-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강진 고려청자 요지'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거창 둔마리 벽화 고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성불사 응진전'
- 국가유산포털 '강진 고려청자 요지'
- 국가유산포털 '부안 유천리 요지'
- 국가유산포털 '예산 수덕사 대웅전'
- 국가유산포털 '안동 봉정사 극락전'
- 국가유산포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 국가유산포털 '거창 둔마리 벽화 고분'
- 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 '상림호 월주요 가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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