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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불상과 석탑 950~1350년

거대한 석불과 다각 다층탑, 승탑에 담긴 고려 사람들의 신앙

핵심 정리

이 단원의 장소: 1 하남 하사창동 옛 절터 (경기 하남시), 2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 3 여주 고달사지 (경기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4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 석탑, 5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충남 부여군 임천면, 성흥산), 6 충주 미륵대원지 (수안보면 미륵리), 7 부여 무량사 오층 석탑 (부여군 외산면), 8 천안 천흥사지 (서북구 성거읍 천흥리), 9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 (예천읍 남본리), 10 제천 사자빈신사지 (한수면 송계리), 11 묘향산 보현사 (평안북도 향산군), 12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 (제비원 석불, 경북 안동시 이천동), 13 남원 만복사지 (전북 남원시 왕정동), 14 원주 법천사지, 15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경기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16 화순 운주사 (사적 화순 운주사지), 17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 (강원 정선군 고한읍), 18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 (공주시 사곡면)12·5·73·1446·1089·12111315161718
지도의 번호는 아래 장소 카드의 번호와 같습니다.

고려 전기, 지방에 선 거대한 불상

고려가 세워질 무렵 지방에는 땅과 군사를 거느린 호족이 많았습니다. 호족들은 자기 고장의 절을 후원했고, 그 덕분에 쇠를 녹여 부어 만든 철불 같은 큰 불상이 지방 곳곳에 모셔졌습니다. 하남 하사창동 옛 절터1에 있던 철불은 높이가 3미터 가까이 되는데, 통일 신라 석굴암 본존불의 단정한 모습을 이으면서도 고려 초의 새로운 느낌을 보여 줍니다. 이 불상은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습니다.

충청 지방에는 돌로 만든 거대한 불상이 섰습니다. 절에 전하는 기록에 따르면 논산 관촉사2의 미륵보살 입상은 광종 때인 968년에 혜명 스님이 만들기 시작해 1006년에야 완성했습니다. 이 불상은 높이가 약 18미터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돌부처입니다. 미륵은 먼 훗날 이 세상에 내려와 부처가 되어 사람들을 구한다고 믿어진 보살이라, 살기 힘든 백성들이 특히 마음을 기댔습니다. 성흥산 중턱 부여 대조사5의 미륵보살 입상도 높이가 약 10미터로, 몸에 비해 머리가 크고 높은 관 위에 네모난 갓 모양의 돌을 얹은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에서는 도읍의 세련된 솜씨보다 지방 장인의 개성이 짙게 느껴집니다.

바위 벽에 새긴 불상인 마애불도 크게 만들었습니다. 흔히 '제비원 석불'이라 부르는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12은 바위에 몸을 선으로 새기고 머리는 따로 조각해 올렸는데, 높이가 12미터를 넘습니다.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15은 바위를 몸으로 삼고 머리와 갓을 따로 얹은 높이 17미터가 넘는 두 불상입니다. 아들이 없던 임금 선종(재위 1083~1094)의 왕비 원신궁주의 꿈에 두 스님이 나타난 뒤 이곳에 불상을 새기자 왕자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전합니다. 다만 조선 세조와 정희왕후를 위해 빈다는 글이 불상에 있어, 조선 초에 만들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절은 먼 길을 가는 사람들을 돌보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소백산맥을 넘는 옛 고갯길 바로 아래의 충주 미륵대원지6에는 큰 돌을 쌓아 만든 석굴 안에 높이 10미터가 넘는 석불이 서 있습니다. 그 곁에서는 길손이 묵어 가는 숙소인 원(院)의 터도 발굴되었습니다.

이름난 스님을 기리는 승탑

신라 말부터 참선으로 마음을 닦아 스스로 깨닫는 것을 중시하는 선종이 호족의 후원을 받으며 지방에 퍼졌습니다. 이름난 스님이 세상을 떠나면 제자들은 사리나 유골을 모신 승탑과, 스님의 일생을 새긴 탑비를 세웠습니다. 여주 고달사지3는 원종대사 찬유가 머문 고달사의 터입니다. 광종은 찬유를 국사(나라의 스승)로 높이고 이 절을 특별히 보호했으며, 975년에는 그의 탑비가 섰습니다. 절터에 남은 국보 승탑은 주인을 알 수 없지만, 받침부터 지붕까지 여덟 모로 된 집 모양인 '팔각원당형'으로, 통일 신라의 형식을 이어 거북과 용을 새긴 고려 초 승탑의 걸작입니다.

11세기에 들어 승탑의 모양은 더 다양해졌습니다. 문종 때 국사가 된 법상종 스님 지광국사 해린의 승탑은 네모난 평면에 온 표면을 화려하게 조각한 독특한 모습으로, 1085년에 세운 탑비와 함께 원주 법천사지14에 서 있었습니다. 이 탑은 일제 강점기인 1911년 일본인에게 팔려 절터를 떠났고, 이듬해 일본 오사카까지 실려 갔습니다. 그 뒤 서울로 되돌아와 경복궁에 놓였지만, 6·25 전쟁 때 포탄을 맞아 크게 부서졌습니다. 보존 처리를 마친 탑은 2024년, 절터를 떠난 지 113년 만에 법천사지 유적전시관 안에 다시 섰습니다.

거란과 싸우던 때에 바친 종과 탑

고려 전기에는 지방 사람들이 힘을 모아 절에 종과 탑을 바쳤습니다. 1010년(현종 1)에 만든 천안 천흥사8의 동종은 통일 신라 범종(절에서 치는 큰 종)의 형식을 이으면서 고려 종의 특징이 나타나기 시작한 종입니다. 종에는 만든 해를 거란의 연호(해를 세는 이름)인 '통화'로 적었는데, 993년 거란의 1차 침입 뒤 고려가 거란과 관계를 맺고 그 연호를 썼기 때문입니다.

같은 1010년 예천 개심사9에서는 오층 석탑을 쌓기 시작해 이듬해 완성했는데, 거란의 2차 침입이 일어난 무렵이었습니다. 기단(탑을 받치는 단)에 새긴 190자의 긴 글에는 향도와 광군이 탑 쌓는 일에 함께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향도는 불교를 믿는 고장 사람들의 신앙 모임이고, 광군은 거란에 대비해 지방에 조직한 군대입니다. 고려 초 지방 사회의 모습을 알려 주는 드문 기록으로 인정받아, 이 탑은 2025년 보물에서 국보가 되었습니다.

거란의 세 차례 침입을 막아 낸 뒤인 1022년(현종 13), 월악산 자락의 제천 사자빈신사10에는 네 마리 사자가 탑의 몸돌을 떠받친 석탑이 섰습니다. 기단의 글에는 나라가 태평하고 외적이 영원히 사라지기를 비는 마음이 담겼습니다. 처음에는 9층으로 세웠지만 지금은 4층까지만 남아 있습니다.

지역마다 다른 탑, 그리고 원의 영향

탑의 모양도 지역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신라 때는 네모난 삼층 석탑이 대부분이었지만, 고려 전기에는 송나라 탑의 영향을 받아 모서리가 여럿이고 층수가 많은 '다각 다층탑'이 북쪽 지방을 중심으로 세워졌습니다. 평창 월정사4의 팔각 구층 석탑이 대표적인데, 탑 앞에는 공양(부처께 정성을 바침)하는 모습의 보살상이 앉아 있습니다. 북쪽 묘향산(지금의 북한 땅)의 보현사11에는 1044년에 세웠다는 글이 남은 구층 석탑과 팔각 십삼층 석탑이 함께 전합니다(팔각 탑은 조선 때 것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한편 옛 백제 땅에서는 백제 탑의 전통이 고려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부여 무량사7의 오층 석탑은 넓고 얇은 지붕돌의 끝이 살짝 들려, 부여 정림사지 오층 석탑을 떠올리게 합니다. 무량사는 조선 전기의 김시습이 말년을 보내다 세상을 떠난 곳이기도 합니다. 그는 『금오신화』에서 전라도 남원의 만복사13를 이야기의 무대로 삼았는데, 문종 때 세운 이 절은 지금 터만 남아 석불과 오층 석탑 등이 전합니다.

고려 시대에는 틀에 얽매이지 않은 독특한 탑과 불상도 생겨났습니다.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17은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칠층 탑(모전석탑)으로, 신라의 자장 스님이 부처의 사리를 모셨다는 전설이 전합니다. 화순 운주사16에는 몸돌과 지붕돌을 둥글게 다듬은 원형 다층 석탑, 바위에 새긴 채 누워 있는 두 석불(와불)을 비롯해 지금도 석탑 20여 기와 석불 90여 구가 흩어져 있습니다. 신라 말의 승려 도선이 하룻밤에 천 개의 불상과 탑을 세우려 했다는 전설과, 누운 불상이 일어서는 날 새 세상이 열린다는 이야기에는 백성들의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13세기 후반 고려가 원의 간섭을 받게 되자, 원을 거쳐 티베트 불교의 문화도 들어왔습니다. 14세기 무렵에 세운 것으로 보는 공주 마곡사18의 오층 석탑은 꼭대기에 라마탑(티베트 불교식 탑) 모양의 작은 금속 탑을 얹어 '탑 위의 탑'이라 불리며, 2025년 국보가 되었습니다. 1348년에 세운 경천사지 십층 석탑도 원의 영향을 받은 탑입니다. 이렇게 고려의 불상과 탑에는 호족과 백성의 바람, 전쟁 속의 기도, 바깥 세계와의 교류가 함께 새겨져 있습니다.

연표

  1. 968년 광종 때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을 만들기 시작함 (1006년 완성)
  2. 975년 여주 고달사에 원종대사 찬유의 탑비를 세움
  3. 1010년 천안 천흥사 동종을 만들고, 예천 개심사 오층 석탑을 쌓기 시작함 (이듬해 완성)
  4. 1022년 제천 사자빈신사에 네 마리 사자가 받친 구층 석탑(사사자 구층 석탑)을 세우고, 외적이 물러가기를 비는 글을 새김
  5. 1044년 묘향산 보현사 구층 석탑을 세움
  6. 1085년 원주 법천사에 지광국사 해린의 탑비를 세움
  7. 1348년 원의 영향을 받은 경천사지 십층 석탑을 세움 (공주 마곡사 오층 석탑도 14세기 무렵의 탑으로 봄)

이 단원의 장소

  1. 1

    하남 하사창동 옛 절터 (경기 하남시)

    950년 · 난이도 ★★★ · 한능검 빈출

    이 철불은 석굴암 본존불의 단정한 모습을 이으면서도 고려 초의 새로운 표현을 보여 주며, 이 무렵에는 지방 호족의 후원으로 큰 철불이 여러 곳에서 만들어졌다. 출토 당시 이곳이 광주군 동부면 춘궁리에 속해 오랫동안 '광주 춘궁리 철불'로 불렸고, 일제 강점기 초에 서울로 옮겨져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위키백과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목록

  2. 2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

    968년 · 난이도 ★★☆ · 한능검 빈출

    흔히 '은진 미륵'이라 불리는 이 불상은 절의 사적비에 따르면 968년(광종 19) 승려 혜명이 만들기 시작해 1006년(목종 9)에 완성했다. 몸에 비해 크게 만든 머리와 높은 관은 지방색이 강한 고려 초 거대 불상의 특징을 보여 주며, 2018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출처: 영어 위키백과 · 위키백과 · 국가유산포털

  3. 3

    여주 고달사지 (경기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975년 · 난이도 ★★★ · 한능검 빈출

    고달사는 원종대사 찬유가 머문 선종 사찰로, 그를 국사로 높인 광종이 3대 부동사원의 하나로 정해 보호했다. 절은 사라졌지만 통일 신라의 팔각원당형을 이어 거북과 용을 새긴 국보 승탑과 977년에 세운 원종대사탑, 탑비의 거북 받침 등이 절터에 남아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국가유산포털 ·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 인문학

  4. 4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 석탑

    1000년 · 난이도 ★★☆ · 한능검 빈출

    신라 때 네모난 3층 석탑이 주류였던 것과 달리, 고려 전기에는 북쪽 지방을 중심으로 이처럼 여러 모서리를 가진 다층 석탑이 세워졌다. 높이 약 15m로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고, 1970년 해체 수리 때 탑 안에서 사리장엄구가 나왔다.

    출처: 영어 위키백과 · 위키백과 · 참고 자료

  5. 5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충남 부여군 임천면, 성흥산)

    1000년 · 난이도 ★★★

    높이 약 10m로,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과 함께 몸에 비해 큰 머리와 기둥 같은 몸을 지닌 충청 지방 고려 전기 거대 석불의 대표작이다. 절은 성흥산 중턱에 있으며, 한 노승이 바위에 큰 새가 내려앉는 것을 본 뒤 바위가 미륵보살로 변해 있었다는 전설이 절 이름 '대조사(大鳥寺)'의 유래로 전한다.

    출처: 위키백과 · 국가유산포털 · 위키백과 2

  6. 6

    충주 미륵대원지 (수안보면 미륵리)

    1000년 · 난이도 ★★★

    고려 초(10~11세기)에 세운 것으로 보는 절터로, 북쪽을 바라보는 석굴 안에 석조여래입상(보물)이 서 있고 오층석탑·석등과 커다란 돌거북이 함께 남아 있다. 소백산맥을 넘는 옛 고갯길 바로 아래에 있어, 발굴로 드러난 원 터는 고개를 넘나드는 길손의 숙소였던 것으로 본다.

    출처: 위키백과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목록

  7. 7

    부여 무량사 오층 석탑 (부여군 외산면)

    1000년 · 난이도 ★★★

    무량사 오층 석탑은 지붕돌이 넓고 얇으며 끝이 살짝 들려, 부여 정림사지 오층 석탑으로 대표되는 백제 석탑 양식이 고려 때까지 옛 백제 지역에 이어졌음을 보여 준다. 탑 뒤의 극락전은 조선 중기에 다시 지은 보기 드문 2층 불전이며, 이 절은 매월당 김시습이 말년을 보내고 1493년에 세상을 떠난 곳이기도 하다.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목록 · 영어 위키백과 · 위키백과

  8. 8

    천안 천흥사지 (서북구 성거읍 천흥리)

    1010년 · 난이도 ★★★

    종에는 '성거산 천흥사 종명 통화 28년 경술'이라는 글이 있어 1010년 천흥사의 종으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고, 통일 신라 범종의 형식을 이으면서 고려 범종의 특징이 나타나기 시작한 종으로 평가된다. 절은 사라졌고 동종은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지만, 절터에는 오층 석탑과 당간지주(모두 보물)가 남아 있다.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목록 · 국가유산포털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영어 위키백과

  9. 9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 (예천읍 남본리)

    1010년 · 난이도 ★★★

    기단에 새겨진 190자의 명문은 고려 석탑 명문 가운데 가장 길며, 탑을 세운 때와 참여한 사람들을 자세히 적고 있어 고려 초 지방 사회와 향도·광군의 모습을 알려 주는 드문 사료이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25년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되었다.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목록 · 참고 자료 · 서울신문 · 참고 자료 2

  10. 10

    제천 사자빈신사지 (한수면 송계리)

    1022년 · 난이도 ★★★

    기단의 명문으로 1022년에 9층으로 세웠음을 알 수 있지만 지금은 4층까지만 남아 있으며, 네 모서리의 사자 사이 가운데에는 두건을 쓴 인물 좌상이 앉아 있다. 통일 신라의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을 본뜬 형식으로,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출처: 국가유산포털 ·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 인문학 · 참고 자료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목록

  11. 11

    묘향산 보현사 (평안북도 향산군)

    1044년 · 난이도 ★★★

    보현사는 1042년 무렵 크게 지어진 묘향산의 대표 사찰로, 두 석탑은 모두 북한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팔각 십삼층 석탑은 고려 전기 북쪽 지방에 유행한 다각 다층탑으로 보는 견해와 조선 때 세웠다는 견해가 갈린다.

    출처: 영어 위키백과 · 영어 위키백과 2 · 영어 위키백과 3 · 참고 자료

  12. 12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 (제비원 석불, 경북 안동시 이천동)

    1050년 · 난이도 ★★☆ · 한능검 빈출

    머리를 따로 만들어 얹은 방식과 조각 양식으로 보아 11세기 무렵 고려 시대에 만든 것으로 보며, 17세기 초 안동 읍지 『영가지』에는 불상 위에 기와지붕이 덮여 있었다고 적혀 있다. 옛 연미사가 있었다고 전하는 자리에 서 있고, 제비원은 집을 지키는 성주신을 노래하는 「성주풀이」의 발상지로도 알려져 있다.

    출처: 참고 자료 ·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 인문학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목록

  13. 13

    남원 만복사지 (전북 남원시 왕정동)

    1060년 · 난이도 ★★☆

    『신증동국여지승람』은 만복사를 고려 문종(재위 1046~1083) 때 세웠다고 적었고, 절은 뒤에 불타 터만 남았다. 『금오신화』의 「만복사저포기」는 이 절에서 부처와 저포 놀이 내기를 해 이긴 양생이 왜구의 난리에 죽은 여인의 혼령과 인연을 맺는 이야기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전북일보

  14. 14

    원주 법천사지

    1085년 · 난이도 ★★★ · 한능검 빈출

    지광국사탑은 네모난 평면에 온 표면을 화려하게 조각한 독특한 승탑으로, 1911년 일본인에게 팔려 오사카까지 갔다가 돌아온 뒤 경복궁에 서 있던 중 6·25 전쟁 때 포탄에 맞아 크게 부서졌다. 2016년부터 해체·보존 처리를 거쳐 2023년 원주로 돌아왔고 2024년 법천사지 유적전시관 안에 다시 세워졌으며, 탑비는 처음부터 절터에 남아 있다.

    출처: 국가유산포털 · 국가유산포털 2 · 주간경향 · 경향신문 · 서울신문

  15. 15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경기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1090년 · 난이도 ★★☆ · 한능검 빈출

    아들이 없던 선종의 비 원신궁주의 꿈에 두 승려가 나타난 뒤 왕이 이곳 바위에 두 불상을 새기게 하자 왕자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전하며, 거대한 크기와 토속적인 모습은 고려 시대 지방에서 유행한 거대 불상의 특징을 보여 준다. 다만 불상에 새겨진, 세조와 정희왕후를 위해 미륵에게 비는 명문을 근거로 조선 초에 만들었다는 견해도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서울신문 · 참고 자료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목록

  16. 16

    화순 운주사 (사적 화순 운주사지)

    1100년 · 난이도 ★★☆

    운주사는 창건 연대가 분명하지 않지만 남은 석탑과 석불은 대개 고려 시대에 만든 것으로 보며, 조선 전기의 『동국여지승람』에 절 좌우 산등성이에 석불과 석탑이 각각 1천 개씩 있다고 적혀 있고 지금도 석탑 20여 기와 석불 90여 구가 남아 있다. 도선이 하룻밤에 천불천탑을 세우다 닭이 울어 마지막 두 석불을 일으켜 세우지 못했다는 전설과, 이 와불이 일어서는 날 새 세상이 열린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출처: 국가유산포털 · 위키백과 · 영어 위키백과 · 주간경향

  17. 17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 (강원 정선군 고한읍)

    1100년 · 난이도 ★★★

    '수마노'라는 이름은 자장이 당에서 돌아올 때 서해 용왕에게서 얻은 마노석을 물길로 옮겨 와 탑을 쌓았다는 전설에서 나왔다고 한다. 높이 약 9m로, 석회암 지대인 이 일대의 고회암(돌로마이트)을 다듬어 쌓았으며, 탑 안에서 나온 탑지석에는 조선 시대에 여러 차례 고쳐 쌓은 기록이 남아 있다.

    출처: 국가유산포털 · 세계일보 · 뉴시스 · 참고 자료

  18. 18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 (공주시 사곡면)

    1350년 · 난이도 ★★★

    고려가 원의 간섭을 받던 14세기 무렵에 세운 것으로 보며, 원을 통해 들어온 티베트 불교(라마교) 탑 양식이 고려 미술에 끼친 영향을 보여 준다. 지금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고, 마곡사는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의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랐다.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목록 · 참고 자료 · 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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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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