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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경제와 대외 교류 992~1391년
조운과 길, 벽란도 무역으로 바다 건너까지 이어진 고려의 살림
핵심 정리
- 지방의 세곡은 바닷가·강가의 조창에 모았다가 배로 개경까지 날랐습니다(조운)
- 험한 안흥량을 피하려고 1134년 굴포 운하를 팠지만 끝내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 도적이 숨던 길목에는 절과 함께 길손이 묵는 원을 두었습니다(봉선홍경사·혜음원)
- 벽란도에는 송·일본은 물론 대식국(아랍) 상인까지 드나들었고, 1074년부터 송으로 가는 사신은 주로 남쪽 명주 바닷길을 썼습니다
- 고려 말 문익점이 들여온 목화(1364년 첫 재배)가 퍼지면서 무명이 백성의 옷감이 되었습니다
세곡을 나른 물길, 조운
고려는 지방에서 세금으로 거둔 곡식, 곧 세곡을 수도 개경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무거운 곡식을 수레로 먼 길을 나르기는 어려워 배를 썼는데, 이를 조운이라고 합니다. 고려 초에 나라는 바닷가와 큰 강가의 포구 12곳(뒤에 13곳)에 세곡을 모아 두는 창고인 조창을 두었고, 992년(성종 11)에는 포구마다 개경까지 실어 나르는 뱃삯도 정했습니다. 지금의 전남 영광 바닷가에 있던 부용창1은 서해 뱃길로, 섬강이 남한강에 흘러드는 원주의 흥원창2은 남한강과 한강 물길로 세곡을 보냈습니다.
남쪽에서 올라오는 조운선이 가장 두려워한 곳은 태안반도 끝의 안흥량이었습니다. 물살이 빠르고 바닷속 바위가 많아 배가 자주 부서지던 곳입니다. 1134년(인종 12) 고려는 이 바다를 돌아가지 않으려고 많은 사람을 모아, 태안반도의 잘록한 허리를 가로질러 가로림만과 천수만을 잇는 굴포 운하12를 파게 했습니다. 하지만 단단한 바위를 깨기 어려웠고, 파 놓은 물길은 밀물이 드나들 때마다 흙으로 다시 메워졌습니다. 그 뒤 고려와 조선에서 여러 번 다시 팠지만 운하는 끝내 열리지 않았습니다.
이 바다가 얼마나 험했는지는 물속에서 나온 배들이 보여 줍니다. 2009년 안흥량의 태안 마도 앞바다13에서 1208년 봄에 가라앉은 고려 배를 발굴했고, 이어서 고려 배 두 척이 더 나왔습니다. 배에서 나온 목간과 죽찰, 곧 글씨를 적은 나무·대나무 화물표를 보면, 실린 곡식과 젓갈은 전라도 남쪽 고을들이 개경의 관리들 앞으로 부친 짐이었습니다.
길손을 지킨 원과 땅을 거느린 절
땅 위의 길도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드문 고개나 갈대밭에는 도적이 숨어 길손을 덮치곤 했습니다. 그래서 고려는 이런 길목에 절을 세우고, 그 곁에 원(院), 곧 길 가는 사람이 쉬고 묵어 가는 집을 두었습니다. 현종은 1016년부터 1021년까지 지금의 천안 성환에 봉선홍경사를 지었고, 절 곁의 원에서는 길손에게 잠자리와 먹을 것을 내주었습니다. 그 내력을 문신 최충이 글로 지어 1026년에 새긴 비석이 국보 봉선홍경사 갈기비4입니다. 1122년(예종 17)에는 개경과 남경(지금의 서울) 사이의 파주 고갯길에도 도적을 막으려고 절과 함께 혜음원10을 완성했습니다. 왕이 머무는 별원까지 갖춘 큰 시설이었습니다.
큰 절은 이처럼 나라의 일을 돕기도 했고, 나라의 인정을 받아 넓은 땅을 거느리기도 했습니다. 1085년(선종 2) 양산 통도사는 인구와 세금을 맡은 관청인 상서호부의 공문에 따라 절 땅의 경계에 돌 표지를 세웠습니다. 장생은 땅의 경계를 알리는 표지이고, 이처럼 나라의 명에 따라 세운 것을 국장생이라 부릅니다. 그 가운데 하나인 통도사 국장생 석표7가 보물로 남아 있습니다.
벽란도에서 바다 건너로
바다 건너 교역은 개경 가까이 예성강 하류의 나루인 벽란도3로 모였습니다. 송과 일본의 상인이 자주 드나들었는데, 『고려사』에는 고려를 찾은 송 상인이 송 남쪽 바닷가의 천주8(지금의 취안저우) 사람이었다는 기록이 여러 번 나옵니다. 천주는 1087년 송이 바다 무역을 맡는 관청인 시박사를 둔 큰 항구였고, 이곳에는 아라비아와 페르시아 상인들도 모여 살았습니다. 그들의 이슬람 사원 청정사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아랍 상인이 고려까지 온 일도 있었습니다. 당·송 사람들은 아랍, 곧 이슬람 세계를 대식이라 불렀습니다. 그 무렵 이슬람 세계에서 널리 받들던 우두머리인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는 바그다드5에 있었습니다. 『고려사』에는 1024년, 1025년, 1040년에 대식국 상인들이 왔다고 적혀 있고, 1040년에 온 상인들은 수은과 향료 등을 바쳤습니다. 이런 만남을 거쳐 '코리아'의 뿌리인 '고려'라는 이름이 서쪽 세계에 알려졌다고 봅니다.
거란 때문에 끊겼던 송과의 사신 왕래는 1071년 다시 열렸습니다. 고려 사신은 원래 서해를 건너 산둥반도 끝의 항구 등주6에서 육로로 송의 도읍 개봉에 갔는데, 이 길은 거란 땅과 가까웠습니다. 1074년 사신 김양감이 거란을 멀리하고 싶다며 길을 바꾸어 달라고 청하자 송이 받아들였습니다. 그 뒤로 고려 사신은 흑산도를 거쳐 명주9(지금의 닝보)로 가는 남쪽 바닷길을 주로 썼습니다. 송은 1117년 명주에 고려 사신을 맞는 고려사관까지 지었습니다.
1123년 명주를 떠난 송의 사신단도 이 바닷길로 군산도11(지금의 군산 선유도)에 닿았습니다. 사신단은 이 섬의 객관, 곧 손님을 맞는 집인 군산정에서 고려 관원들의 첫 공식 영접을 받았습니다. 일행 가운데 서긍은 개경에 다녀간 뒤 바닷길과 도읍, 풍속을 자세히 적은 『고려도경』을 지었습니다.
고려 후기의 바다와 백성의 살림
바다를 건너와 고려에 뿌리내린 사람 이야기도 전합니다. 베트남의 리 왕조가 쩐 씨에게 왕위를 빼앗기자, 왕자 이용상이 리 왕조의 도읍 탕롱14(지금의 하노이)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는 1226년 고려에 와서 화산 이씨의 시조, 곧 첫 조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 이야기는 족보 같은 뒷날의 기록에만 나오고, 『고려사』에서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원나라가 중국을 다스리던 때에도 바다 무역은 활발했습니다. 1323년 무렵 원의 경원(옛 명주)을 떠나 일본 하카타(지금의 후쿠오카)로 가던 큰 무역선이 지금의 신안 증도 앞바다15에 가라앉았습니다. 1975년 어부의 그물에 청자가 걸려 올라오며 알려진 이 배에서는 중국 도자기 2만여 점과 동전 28톤이 나왔고, 고려청자도 조금 섞여 있었습니다. 고려 서남쪽 바다는 중국과 일본을 잇는 뱃길이 지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고려 말에는 백성의 옷차림을 바꿀 씨앗이 들어왔습니다. 공민왕 때 원에 사신으로 갔던 문익점이 목화씨를 가지고 돌아와, 1364년 장인(아내의 아버지) 정천익과 함께 지금의 경남 산청 단성에 심은 것입니다. 기르는 법을 몰라 처음에는 한 그루만 살았지만 3년 만에 씨앗을 크게 늘렸습니다. 목화로 짠 무명은 삼베보다 따뜻해 차츰 백성의 옷감이 되었습니다. 그 자리가 '목화를 처음 심은 옛터'라는 뜻의 산청 목면시배 유지16입니다.
백성들이 힘을 모아 복을 빌기도 했습니다. 1387년 지금의 경남 사천에서는 4,100명이 계, 곧 뜻을 같이하는 모임을 맺고 향나무를 묻어 왕의 장수와 나라의 평안을 빌었습니다. 이 일을 새긴 비석이 사천 흥사리 매향비17입니다. 매향은 먼 훗날 이 세상에 온다는 부처인 미륵불에게 바칠 향을 미리 묻어 두는 불교 행사입니다. 이런 행사를 함께하던 무리인 향도는 고려 후기에 마을의 일과 혼례·장례를 서로 돕는 공동체로 바뀌어 갔습니다.
고려가 막을 내리기 한 해 전인 1391년(공양왕 3)에는 지금의 태국 땅에 있던 섬라곡국, 곧 시암이 사신 내공 등 8명을 보내 토산물과 나라의 편지인 국서를 바쳤습니다. 1351년에 세워진 이 나라의 도읍은 아유타야18였습니다. 조창을 떠난 조운선에서 먼 남쪽 나라의 사신까지, 고려의 살림은 늘 바다와 이어져 있었습니다.
연표
- 992년 포구마다 개경까지 세곡을 나르는 뱃삯을 정함 (조운 제도 정비)
- 1024년 대식국(아랍) 상인들이 고려에 옴 (1025·1040년에도 옴)
- 1074년 김양감의 요청으로 송으로 가는 사신길을 등주에서 명주 쪽으로 바꿈
- 1123년 송의 사신단이 군산도를 거쳐 개경에 옴 (서긍이 다녀간 뒤 『고려도경』을 지음)
- 1134년 안흥량을 피하려고 태안반도에 굴포 운하를 파려 했으나 이루지 못함
- 1323년 원에서 일본으로 가던 무역선(신안선)이 신안 앞바다에 가라앉음
- 1364년 문익점과 정천익이 산청에 목화를 처음 심음 (3년 만에 씨앗을 크게 늘림)
- 1391년 섬라곡국(시암)의 사신이 고려에 옴
이 단원의 장소
- 1
부용창 터 (전남 영광군 법성면 입암리 일대, 와탄천 하구)
부용창은 고려 초에 둔 12조창(뒤에 13조창) 가운데 하나로 영광 일대의 세곡을 모아 서해 뱃길로 개경에 보냈으며, 창이 있던 포구는 성종(981~997) 때 부용포라 불렸다. 고려 말 왜구의 침략 등으로 문을 닫은 것으로 여겨지며, 조선 때에는 와탄천을 따라 바다 쪽으로 더 나간 법성포에 법성창이 들어서 그 역할을 이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목록
- 2
흥원창 터 (원주시 부론면 흥호리, 섬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
흥원창은 고려 초에 둔 12조창(뒤에 13조창) 가운데 하나로, 992년(성종 11)에는 지방 포구에서 개경까지 세곡을 나르는 운임이 정해질 만큼 조운 제도가 자리 잡았다. 섬강이 남한강에 흘러드는 나루에 자리해 원주 등 강원 영서 지방의 세곡을 모아 남한강과 한강 물길로 개경에 보냈고, 조선 시대에도 조창으로 이어졌다.
- 3
벽란도 (예성강 하류, 개성 서쪽)
벽란도는 수도 개경과 가까운 예성강 하류의 나루로, 송·일본·아라비아 상인이 오가는 고려의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했다. 1024년(현종 15) 대식국(아라비아) 상인들이 고려에 왔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들을 통해 '고려(Corea)'라는 이름이 서방에 알려졌다고 한다.
출처: 위키백과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4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충남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대홍리)
비문에 따르면 현종은 갈대가 우거져 도적이 자주 나타나던 이 길목에 1016년부터 1021년까지 절을 짓고, 절 곁에 원을 두어 길손에게 잠자리와 먹을거리를 주었다. 1177년 다시 일어난 망이·망소이 무리가 이 원(홍경원)을 불태우기도 했으며, 지금은 절터에 이 비석만 남아 있다.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목록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위키백과
- 5
바그다드 (아바스 왕조의 수도, 이라크)
대식(大食)은 페르시아어로 아랍인을 뜻하는 '타지(Tāzī)'에서 온 말로 당·송에서 아랍(이슬람) 세계를 가리켰으며, 『고려사』에는 1024년·1025년·1040년 대식국 상인들이 고려에 왔다는 기록이 있다. 762년 아바스 왕조가 세운 바그다드는 이때도 칼리프가 머무는 이슬람 세계의 중심 도시였지만, 실권은 부와이 왕조가 쥐고 있었다.
- 6
등주 (오늘날 중국 산둥성 옌타이시 펑라이 옛 성)
고려 사신은 예성강 어귀를 떠나 옹진 앞바다에서 서해를 건너 산둥반도 북쪽 끝의 등주에 내린 뒤 육로로 송의 수도 개봉에 갔다. 1074년 김양감이 거란을 멀리하려 길을 바꾸게 해 달라고 청한 뒤로는 흑산도를 거쳐 명주(오늘날 닝보)에 이르는 남쪽 항로가 주로 쓰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중국어 위키문헌 · 영어 위키백과
- 7
통도사 국장생 석표 (양산 하북면 백록리, 통도사 남동쪽)
석표에는 1085년에 상서호부의 공문에 따라 세웠다는 글이 새겨져 있어, 고려의 큰 절이 나라의 인정을 받아 넓은 땅을 거느렸음을 보여 준다. 부처의 진신 사리를 모신 양산 통도사에서 남동쪽으로 2.5km쯤 떨어져 있으며, 또 하나의 통도사 국장생이 울산 울주군 상천리에 남아 있다.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목록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8
취안저우 청정사 (천주, 중국 푸젠성)
천주(취안저우)는 1087년 시박사가 설치된 뒤 남송·원 대에 광저우를 넘어서는 세계적인 무역항으로 자랐고, 1009년에 처음 세워졌다고 전하는 청정사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이슬람 사원 가운데 하나다. 『고려사』에는 이곳 출신 송 상인들이 고려에 와서 토산물을 바치고 교역한 기록이 여러 번 나오며, 이 도시의 송·원 시대 유적은 202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랐다.
- 9
명주 (오늘날 중국 저장성 닝보)
거란을 피해 1074년 무렵부터 고려 사신은 산둥반도 대신 명주를 오가는 바닷길을 주로 이용했고, 송은 1117년 명주에 고려사관을 세워 이들을 접대했다. 1123년 이곳을 떠나 개경에 다녀간 서긍은 『고려도경』을 남겼으며, 명주는 벽란도를 드나들던 송 상인들의 주요 출항지이기도 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참고 자료 · 위키백과 · 영어 위키백과
- 10
파주 혜음원지 (경기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김부식이 지은 「혜음사신창기」에 따르면 개경과 남경(지금의 서울)을 잇는 이 고갯길(혜음령)에 도적이 많아 절과 원을 지어 1122년에 완성했다. 발굴 조사에서 건물 터와 '혜음원'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나와 고려 시대 원의 모습을 보여 주는 사적이 되었다.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목록 · 위키백과 · 김부식, 「혜음사신창기(惠陰寺新創記)」, 『동문선』
- 11
선유도 (군산 고군산군도, 『고려도경』의 군산도)
서긍 일행은 1123년 음력 6월 이 섬(당시 군산도)에 닿아 바닷가 객관인 군산정에서 고려 관원들의 영접을 받았고, 『고려도경』에 섬의 두 바위 봉우리와 오룡묘 등을 기록했다. 송과 고려를 잇는 바닷길의 중요한 기항지였던 이 섬의 이름 '군산'은 훗날 육지로 옮겨 가 오늘날 군산시의 이름이 되었고, 섬들은 '옛 군산'이라는 뜻의 고군산군도로 불리게 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위키백과 · 위키백과 2
- 12
굴포 운하 터 (태안읍 인평리~서산 팔봉면 어송리 사이)
태안반도 끝의 안흥량은 물살이 거세 조운선이 자주 가라앉았기에, 가로림만과 천수만 사이 약 7km의 잘록한 땅을 뚫으려 했으나 단단한 암반과 밀물에 다시 메워지는 흙 때문에 실패했다. 고려 의종(1154)·공양왕(1391) 때와 조선 때에도 다시 공사를 벌였지만 끝내 배가 다니는 물길은 열리지 않았다.
- 13
태안 마도 앞바다 (안흥량, 충남 태안군 근흥면)
마도 1호선(2009년 발굴)의 목간·죽찰에는 1207~1208년 전라도 남부 고을에서 개경의 관리들에게 보낸 곡물·젓갈 등이 적혀 있었고, 이어 2010년과 2011년 2·3호선도 이 바다에서 발굴되었다. 물살이 거세고 암초가 많아 '지나가기 어려운 바닷길'이라는 뜻의 난행량으로 불리던 곳으로, 무사히 지나기를 빌어 안흥량이라고 고쳐 불렀다.
- 14
탕롱 황성 (리 왕조의 도성, 베트남 하노이)
리 왕조는 1010년 도읍을 호아르에서 탕롱(지금의 하노이)으로 옮겨 1225년 쩐 왕조로 바뀔 때까지 이곳을 도읍으로 삼았고, 탕롱 황성 유적의 중심 구역은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었다. 이용상이 고종 때 옹진에서 몽골군을 막아 화산군에 봉해졌다는 이야기는 화산 이씨 족보 등 후대 기록에 전하는 것으로, 고려의 역사를 정리한 『고려사』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 15
신안 증도 앞바다 (도덕도 부근, 신안선 발견 해역)
신안선은 원의 경원(지금의 닝보)을 떠나 일본 하카타로 가던 배로, 화물표 목간에 적힌 '지치 3년(1323)'으로 침몰 시기를 알 수 있다. 1976~1984년 발굴에서 중국 도자기와 동전, 일부 고려청자가 대량으로 건져 올려져 14세기 동아시아 바닷길 교역의 모습을 보여 준다.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목록 · 영어 위키백과
- 16
산청 목면시배 유지 (단성면 사월리)
처음에는 재배법을 몰라 거의 다 말라 죽고 한 그루만 살아남았으나 3년 만에 씨를 크게 늘렸고, 이후 목화 재배가 전국으로 퍼져 무명이 백성의 옷감으로 자리 잡았다. 이곳은 사적 '산청 목면시배 유지'로 지정되어 있다.
- 17
사천 흥사리 매향비 (사천시 곤양면)
비문은 승려 달공이 지었으며, 매향은 미륵불이 내려올 때 바칠 향을 미리 마련해 두려는 불교 신앙 활동이었다. 이처럼 매향 같은 불교 행사를 위해 모인 향도는 고려 후기에 마을의 노역과 혼례·장례를 함께 하는 공동체 조직으로 바뀌어 갔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국가유산포털
- 18
아유타야 (시암 아유타야 왕국의 도읍, 타이)
섬라곡국은 1351년에 세워진 시암의 아유타야 왕국으로, 이 사신은 동남아시아 나라가 고려에 사신을 보낸 드문 기록이다. 섬라는 조선이 세워진 뒤에도 사신을 보내 왔다.
참고한 자료
- 『고려사』 식화지 조운, 세가 현종·정종·문종·명종·공양왕
- 『송사』 고려전
- 서긍, 『고려도경』
- 김부식, 「혜음사신창기」 (『동문선』)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부용창'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벽란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양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천 흥사리 매향비'
- 국가유산포털 '산청 목면시배 유지'
- 위키백과 '흥원창'
- 위키백과 '파주 혜음원지'
- 위키백과 '고려도경'
- 유네스코 세계유산 '천주: 송·원 시대 중국의 세계 해상 무역 중심지'
- 유네스코 세계유산 '하노이 탕롱 황성 중심 구역'
- 위키백과(영어판) '신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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