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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침입과 삼별초 1217~1273년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 40년 가까이 몽골에 맞선 고려와 삼별초

핵심 정리

이 단원의 장소: 1 박달재 (제천 봉양읍·백운면 경계), 2 강동성 (지금의 평양시 강동군 강동읍 일대), 3 철주 (지금의 평안북도 철산), 4 강화도 (강화 고려궁지), 5 처인성 (용인 남사읍 아곡리), 7 죽주산성 (안성시 죽산면 매산리, 비봉산), 8 강화 가릉 (인천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 9 경주 황룡사지, 10 충주 (옛 고을 중심), 11 춘천 봉의산성 (옛 춘주성, 춘천 봉의산), 12 상주산성 (지금의 상주 모동면 백화산의 금돌성으로 봄), 13 다인철소 (지금의 충주시 대소원면, 옛 이류면 일대), 14 압해도 (전남 신안군 압해읍), 15 장성 입암산성 (장성군 북하면), 16 인제 한계산성 (인제군 북면 한계리), 17 진도 용장성 (궁궐 터), 18 애월 환해장성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 해안), 19 전(傳) 왕온의 묘 (진도군 의신면 침계리), 20 제주 항파두리 항몽 유적 (애월읍)1·10·13234·85·79111214151617·19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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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 유민과 몽골의 첫 침입

13세기 초 몽골의 칭기즈 칸이 여러 부족을 하나로 묶어 금나라를 공격했습니다. 이때 몽골에 쫓긴 거란 유민, 곧 나라 잃은 사람들이 1216년 압록강을 건너 고려로 밀려들었습니다. 이들은 중부 지방까지 휩쓸었지만, 1217년 김취려가 이끈 고려군이 지금의 충북 제천의 고개 박달재1에서 크게 무찔러 북쪽으로 몰아냈습니다. 1218년 다시 들어온 거란 무리는 평양 동쪽의 강동성2에 들어앉았고, 조충과 김취려는 이들을 뒤쫓아 온 몽골군, 여진 사람이 세운 동진의 군대와 함께 성을 에워싸 1219년 항복을 받아 냈습니다.

이때 고려와 몽골은 형제의 약속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몽골이 이 약속을 내세워 공물, 곧 나라에 바치는 물건을 무겁게 요구하면서 두 나라 사이는 나빠졌습니다. 1225년 몽골 사신 저고여가 돌아가던 길에 죽임을 당하자, 몽골은 이를 구실로 1231년 장수 살리타를 앞세워 쳐들어왔습니다(1차 침입). 철주3에서는 몽골군에 붙잡힌 무관 문대가 성을 향해 항복하지 말라고 외치다 죽었고, 성이 무너질 무렵 판관 이희적과 남은 장정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귀주성에서는 박서가 끝까지 성을 지켰지만, 몽골군이 개경 가까이 몰려오자 고려는 싸움을 멈추는 약속인 화의를 맺었습니다. 몽골은 다루가치, 곧 고려를 감시하고 간섭할 관리들을 남겨 두고 물러갔습니다.

강화도로 옮긴 도읍

몽골군이 물러가자 무신 집권자 최우는 1232년 도읍을 강화도4로 옮겼습니다. 말을 타고 싸우는 몽골군이 바다에 약한 점을 노린 것으로, 강화도는 개경과 가까우면서도 바닷길로 지방의 세금 곡식을 실어 올 수 있었습니다. 고려가 끝까지 맞설 뜻을 보이자 몽골은 그해 다시 쳐들어왔습니다(2차 침입). 승려 김윤후는 피란해 있던 처인성5에서 처인부곡 사람들과 함께 싸웠습니다. 부곡은 일반 고을보다 차별을 받던 특수 행정 구역입니다. 이들이 쏜 화살에 총사령관 살리타가 맞아 죽자 몽골군은 물러갔고, 처인부곡은 그 공으로 처인현으로 올라섰습니다.

칭기즈 칸의 뒤를 이은 오고타이 칸은 1234년 금나라를 무너뜨리고, 이듬해 초원의 카라코룸6에 성을 쌓아 수도로 삼았습니다. 고려에는 1235년부터 몽골군이 몇 해 동안 머물며 경상도와 전라도까지 휩쓸었습니다(3차 침입). 고려는 백성을 산성이나 섬으로 들여보내 지키게 했는데, 이를 입보라 합니다. 1236년 죽주산성7에서는 귀주성 싸움에서 몽골군의 성 공격법을 겪어 본 송문주가 미리 대비해, 15일 동안 이어진 공격을 막아 냈습니다.

같은 해 강화의 조정은 부처의 힘으로 적을 물리치려는 바람을 담아 불교 경전 모음인 팔만대장경을 나무판에 새기기 시작해 1251년에 마쳤습니다. 강화도에는 1237년 세상을 떠나 뒷날 순경태후로 높여진 태자비의 무덤인 가릉8도 남아 있습니다. 1238년 경주까지 내려온 몽골군은 황룡사9를 불태웠고, 신라 때 세운 높이 약 80미터의 구층 목탑도 이때 사라졌습니다. 몽골군은 1239년에야 물러갔습니다.

산성과 섬에서 버틴 백성들

몽골은 그 뒤에도 고려 왕이 섬에서 나와 개경으로 돌아오라고 요구하며 쳐들어왔습니다. 1247년 4차에 이은 1253년 5차 침입 때 몽골군은 충주10의 산성을 70여 일 동안 에워쌌습니다. 방호별감으로 성을 지키던 처인성의 김윤후는 군량이 떨어져 가자, 힘을 다해 싸우면 신분을 가리지 않고 벼슬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관청에 딸린 노비의 문서를 불태우고, 몽골군에게서 빼앗은 소와 말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노비와 백성이 한마음으로 싸워 성을 지켜 냈고, 몽골군은 더 남쪽으로 내려가지 못했습니다. 모든 성이 버틴 것은 아니었습니다. 같은 해 지금의 춘천에 있던 춘주성11은 몽골군에 겹겹이 둘러싸였고, 우물이 마르자 소와 말의 피를 마시며 버티다 끝내 함락되었습니다.

1254년부터는 몽골 장수 차라대가 거듭 쳐들어왔습니다. 『고려사』는 그해에만 몽골군에 끌려간 사람이 20만 6,800여 명에 이르고, 죽은 사람은 헤아릴 수 없었다고 적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곳곳에서 맞섰습니다. 1254년 상주산성12에서는 승려 홍지가 몽골군 지휘관을 활로 쏘아 죽여 포위를 풀게 했습니다. 철을 만들어 바치던 특수 행정 구역(소)인 다인철소13의 사람들은 몽골군을 막아 낸 공으로 1255년 익안현이라는 일반 고을로 올라섰습니다. 1256년 차라대가 배 70척을 이끌고 압해도14를 치려 하자 섬사람들은 큰 배에 돌을 날리는 포를 싣고 맞섰고, 배가 부서질 것을 걱정한 몽골군은 바다 공격을 그만두었습니다. 같은 해 입암산성15의 장군 송군비는 노약자를 성 밖으로 내보내 먹을 것이 떨어진 것처럼 꾸몄고, 이를 믿고 몰려든 몽골군을 크게 무찔렀습니다.

오랜 전쟁에 나라는 크게 지쳤습니다. 1258년에는 60여 년 이어진 최씨 정권이 무너졌습니다. 동북쪽에서는 조휘 등이 땅을 바치며 몽골에 항복하자, 몽골은 그곳에 쌍성총관부를 두어 다스렸습니다. 이듬해 한계산성16에서는 방호별감 안홍민이 야별초, 곧 최우가 도둑을 막으려고 만든 특별 부대를 이끌고 나가 몽골군과 조휘 무리를 무찔렀습니다. 같은 해 고려는 태자를 몽골에 보내 화의를 맺었고, 30년 가까이 이어진 몽골의 침입은 멈추었습니다.

개경 환도와 삼별초의 항쟁

화의 뒤에도 무신 집권자들은 개경으로 돌아가기를 미루었습니다. 1270년 마지막 무신 집권자 임유무가 죽임을 당하자 조정은 개경으로 돌아갔고(개경 환도), 100년 동안 이어진 무신 정권도 끝났습니다. 삼별초는 무신 정권을 떠받치던 군대로, 야별초에서 나뉜 좌별초·우별초에, 몽골에 붙잡혔다 도망쳐 온 사람들로 꾸린 신의군을 더한 세 부대였습니다. 조정이 삼별초를 없애라고 명령하자, 배중손이 이끈 삼별초는 왕족 승화후 왕온을 왕으로 받들었습니다. 이어 강화도에서 1천여 척의 배에 나누어 타고 진도로 내려가, 용장성17과 궁궐을 쌓고 자신들이 고려의 정부라고 내세웠습니다.

조정은 삼별초가 제주까지 차지하지 못하도록 제주 바닷가를 따라 돌성을 쌓게 했는데, 바다를 빙 두른 긴 성이라 하여 환해장성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그해 삼별초가 제주에 올라 섬을 차지하면서, 지금 애월18 등지에 남은 이 성벽은 오히려 삼별초가 적을 막는 방어선이 되었습니다. 1271년 김방경이 이끈 고려·몽골 연합군이 진도를 함락했고, 왕온은 몽골군을 이끌던 홍다구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진도에는 그의 무덤으로 전하는 왕온의 묘19가 있습니다.

남은 삼별초는 김통정을 따라 제주로 옮겨, 항파두리20에 바깥은 흙, 안쪽은 돌로 이중 성을 쌓고 버텼습니다. 그사이 몽골은 나라 이름을 원으로 바꾸었습니다. 1273년 연합군에 성이 함락되면서, 1231년부터 40년 넘게 이어진 몽골과의 싸움은 막을 내렸습니다. 그 뒤 원은 제주에 탐라총관부를 두어 직접 다스렸고, 고려에 대한 간섭도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연표

  1. 1219년 강동성의 거란 무리가 항복하고, 고려와 몽골이 형제의 약속을 맺음
  2. 1231년 몽골의 1차 침입, 철주 함락과 귀주성 항전
  3. 1232년 최우가 도읍을 강화도로 옮김, 처인성에서 살리타가 죽음
  4. 1236년 죽주산성 싸움, 팔만대장경을 새기기 시작함 (1251년 완성)
  5. 1253년 김윤후가 충주의 산성을 70여 일 동안 지켜 냄
  6. 1259년 고려가 태자를 몽골에 보내 화의를 맺음
  7. 1270년 개경 환도, 삼별초가 봉기해 진도로 옮겨 감
  8. 1273년 제주 항파두리성이 함락되어 삼별초의 항쟁이 끝남

이 단원의 장소

  1. 1

    박달재 (제천 봉양읍·백운면 경계)

    1217년 · 난이도 ★★★

    1216년 고려에 들어온 거란 유민 군대가 이듬해 중부 지방까지 휩쓸며 남쪽으로 내려오자, 김취려는 제주(堤州, 지금의 제천)의 박달현에서 이들을 크게 깨뜨려 북쪽으로 몰아냈다. 쫓겨 간 거란군은 1218년 다시 들어와 강동성에 웅거했다가 이듬해 고려·몽골 연합군에 항복했고, 이 고개는 오늘날 대중가요 '울고 넘는 박달재'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출처: 위키백과 · 위키백과 2 · 고려사 열전 김취려전 (고종 4년, 1217: 제주 박달현 전투)

  2. 2

    강동성 (지금의 평양시 강동군 강동읍 일대)

    1219년 · 난이도 ★★★ · 한능검 빈출

    몽골에 쫓긴 거란 유민은 1216년부터 고려를 휩쓸다 강동성에 들어앉았고, 1218~1219년 조충과 김취려가 몽골·동진군과 함께 성을 함락했다. 몽골은 이때 맺은 형제 맹약을 내세워 무거운 공물을 요구했고, 1225년 몽골 사신 저고여가 돌아가던 길에 피살된 일은 1231년 몽골 침입의 빌미가 되었다.

    출처: 고려사 세가 고종 6년(1219) 정월 · 영어 위키백과

  3. 3

    철주 (지금의 평안북도 철산)

    1231년 · 난이도 ★★★

    철주는 지금의 평안북도 철산으로, 압록강을 건넌 살리타의 몽골군이 함신진(의주)의 항복을 받은 뒤 공격해 함락했다. 고려의 문인 김구는 뒷날 시 「과철주(철주를 지나며)」로 철주 사람들의 항전을 기렸고, 같은 침입 때 귀주성에서는 박서가 몽골군의 공격을 끝내 막아 냈다.

    출처: 『고려사』 권23 세가 고종 18년(1231) 9월; 권121 열전 충의 문대 · 전북일보 · 영어 위키백과 · 영어 위키백과 2

  4. 4

    강화도 (강화 고려궁지)

    1232년 · 난이도 ★☆☆ · 한능검 빈출

    1232년 최우는 몽골군이 수전에 약한 점을 노려 강화로 천도했고, 새 궁궐은 지금의 강화읍 관청리 일대에 세워졌다. 고려 조정은 1270년 개경으로 환도할 때까지 38년간 이곳에서 항전했으며, 이 강화 도읍기에 팔만대장경 판각도 이루어졌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 국가유산포털 · 위키백과

  5. 5

    처인성 (용인 남사읍 아곡리)

    1232년 · 난이도 ★★☆ · 한능검 빈출

    1232년(고종 19) 겨울, 처인성에 피란해 있던 승려 김윤후와 처인부곡 주민들은 성을 공격해 온 몽골군의 총사령관 살리타를 화살로 사살했고, 지휘관을 잃은 몽골군은 곧 철수했다. 김윤후는 상장군 벼슬을 사양했으며, 처인부곡은 이 공으로 처인현으로 승격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 · 영어 위키백과

  6. 6

    카라코룸 유적 (몽골 하르호린)

    1235년 · 난이도 ★★☆ · 🌏 지도 밖

    오고타이 칸이 1235년 오르혼강 유역에 성벽을 쌓아 세운 몽골 제국의 수도로, 몽골군이 고려를 거듭 침입하던 시기 제국의 중심이었다. 쿠빌라이 칸이 수도를 상도와 대도(지금의 베이징)로 옮기면서 쇠퇴했고, 16세기 말 그 터 곁에 폐허의 돌을 가져다 쓴 에르덴조 사원이 세워졌다.

    출처: 영어 위키백과 · 참고 자료 · 유네스코 세계유산 · 영어 위키백과 2

  7. 7

    죽주산성 (안성시 죽산면 매산리, 비봉산)

    1236년 · 난이도 ★★★

    『고려사』 송문주전에 따르면 몽골군은 포차로 성을 치고 불을 지르며 15일 동안 공격했으나, 송문주가 적의 공격 방법을 미리 헤아려 대비한 덕분에 성을 지켰고 그는 그 공으로 장군에 올랐다. 죽주산성 싸움은 처인성·충주성 싸움과 함께 지방의 성이 몽골군을 막아 낸 대몽 항쟁의 사례로 꼽힌다.

    출처: 위키백과 · 참고 자료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목록

  8. 8

    강화 가릉 (인천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

    1237년 · 난이도 ★★☆

    가릉은 원종의 비이자 충렬왕의 어머니인 순경태후의 능으로, 1232년부터 1270년까지 고려가 강화도에 도읍하던 때 만들어졌다. 강화도에는 고종의 홍릉, 희종의 석릉, 강종의 비 원덕태후의 곤릉과 함께 네 곳의 고려 왕릉이 남아 있어, 개성 일대 밖에서는 보기 드문 고려 왕릉 무리를 이룬다.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목록 · 위키백과

  9. 9

    경주 황룡사지

    1238년 · 난이도 ★☆☆ · 한능검 빈출

    황룡사는 553년(진흥왕 14)에 짓기 시작한 신라 최대의 절이고, 구층 목탑은 645년(선덕여왕 14) 백제 장인 아비지를 불러 완성한 높이 225척(약 80m)의 탑이었다. 1238년(고종 25) 몽골의 3차 침입 때 가람 전체가 불타 다시 세워지지 못했으며, 지금은 목탑의 심초석을 비롯한 주춧돌만 남아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 · 국가유산포털

  10. 10

    충주 (옛 고을 중심)

    1253년 · 난이도 ★★☆ · 한능검 빈출

    신분에 관계없이 관작을 주겠다는 김윤후의 약속에 노비와 백성이 힘을 합쳐 성을 지켜 냈고, 몽골군의 남진도 막혔다. 이 공으로 충주는 이듬해 국원경으로 승격되었으며, 싸움터인 산성이 남산성(충주산성)인지 대림산성인지는 학설이 갈리지만 둘 다 충주 시내에서 5km 안쪽에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

  11. 11

    춘천 봉의산성 (옛 춘주성, 춘천 봉의산)

    1253년 · 난이도 ★★★

    『고려사』에 따르면 성을 지킬 수 없게 되자 춘주의 문학 조효립은 아내와 함께 불 속에 뛰어들었고, 안찰사 박천기는 결사대를 이끌고 포위를 뚫으려다 모두 전사했으며, 성은 끝내 함락되었다. 춘천 시내 북쪽 봉의산 꼭대기를 두른 봉의산성이 그때의 춘주성으로 여겨진다.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목록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고려사』 권121 열전 충의 조효립; 권24 세가 고종 40년(1253)

  12. 12

    상주산성 (지금의 상주 모동면 백화산의 금돌성으로 봄)

    1254년 · 난이도 ★★★

    『고려사』에는 1254년(고종 41) 10월 차라대가 상주산성을 공격하자 황령사 승려 홍지가 몽골군의 제4관인을 쏘아 죽였고, 죽은 군사가 절반을 넘자 몽골군이 포위를 풀고 물러갔다고 적혀 있다. 상주산성은 흔히 상주와 충북 영동 사이 백화산의 금돌성(백화산성)으로 보며, 이 일대에는 몽골군이 크게 졌다는 '저승골' 이야기가 전한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위키백과 · 영어 위키백과

  13. 13

    다인철소 (지금의 충주시 대소원면, 옛 이류면 일대)

    1255년 · 난이도 ★★★ · 한능검 빈출

    고려의 소(所)는 금·은·철·종이·먹 등을 만들어 바치던 특수 행정 구역으로, 그 주민들은 일반 군현민보다 차별을 받았다. 다인철소 주민들은 몽골군을 막아 낸 공으로 1255년(고종 42) 익안현으로 승격되었으며, 이곳은 제철 유적이 몰려 있는 지금의 충주시 대소원면(옛 이류면) 일대로 본다.

    출처: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위키백과

  14. 14

    압해도 (전남 신안군 압해읍)

    1256년 · 난이도 ★★★

    몽골의 침입 때 고려는 백성을 산성과 섬으로 들여보내 지키게 했는데(산성·해도 입보), 압해도 사람들은 바다 싸움에 약한 몽골군을 포로 막아 내 섬을 지켜 냈다. 이 일은 『고려사』에 전한다.

    출처: 『고려사』 열전 윤춘(尹椿) — 車羅大以舟師七十艘…押海人置二砲於大艦待之…隨處備砲 故蒙人遂罷水攻之具 · 위키백과

  15. 15

    장성 입암산성 (장성군 북하면)

    1256년 · 난이도 ★★★

    『고려사』에 따르면 강화 조정이 남쪽으로 보낸 장군 송군비는 입암산성에 들어가 지키다가 이 꾀로 몽골군을 물리쳤다. 입암산성은 정읍과 장성 사이 고갯길을 지키는 요충지로, 정유재란 때인 1597년에는 의병장 윤진이 이곳을 지키다 순절했다.

    출처: 위키백과 · 영어 위키백과

  16. 16

    인제 한계산성 (인제군 북면 한계리)

    1259년 · 난이도 ★★★

    조휘는 1258년 탁청과 함께 동북면병마사 신집평을 죽이고 화주 이북 땅을 들어 몽골에 항복해 쌍성총관부가 세워지게 한 인물이다. 한계산성은 설악산 서쪽의 험한 산줄기에 쌓은 돌성으로, 몽골 침입 때 백성들이 들어가 지킨 산성이었으며 2019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목록 · 『고려사』 권24 세가 고종 46년(1259)

  17. 17

    진도 용장성 (궁궐 터)

    1270년 · 난이도 ★☆☆ · 한능검 빈출

    삼별초는 1270년 배중손의 지휘 아래 1천여 척의 배에 나눠 타고 진도로 옮겨 용장성과 궁궐을 쌓고 스스로 고려의 정부임을 내세웠다. 1271년 김방경이 이끄는 고려·몽골 연합군에 진도가 함락되자 남은 세력은 김통정을 따라 제주도로 옮겨 1273년까지 항전했다.

    출처: 위키백과 · 위키백과 2 · 국가유산포털

  18. 18

    애월 환해장성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 해안)

    1270년 · 난이도 ★★☆

    1270년 조정은 고여림 등을 탐라(제주)에 보내 이 성을 쌓기 시작했지만, 그해 삼별초가 상륙해 관군을 무찌르고 섬을 차지하면서 성벽은 삼별초가 여몽 연합군을 막는 방어선이 되었다. 조선 시대에도 왜구를 막으려 계속 고쳐 쌓았으며, 지금은 애월 구간을 비롯한 해안 10개 구간이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출처: 위키백과 · 위키백과 2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목록

  19. 19

    전(傳) 왕온의 묘 (진도군 의신면 침계리)

    1271년 · 난이도 ★★☆

    1271년 김방경이 이끈 고려·몽골 연합군이 진도를 함락하자 승화후 온은 몽골에 투항한 홍복원의 아들로 몽골군을 이끌던 홍다구에게 죽임을 당했고, 남은 삼별초는 김통정을 따라 제주로 옮겨 1273년까지 싸웠다. 그가 묻혔다고 전하는 이 무덤은 전라남도 기념물이며, 바로 옆 고개는 '왕무덤재'라 불린다.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목록 · 영어 위키백과 · 위키백과 · 영어 위키백과 2

  20. 20

    제주 항파두리 항몽 유적 (애월읍)

    1273년 · 난이도 ★☆☆ · 한능검 빈출

    1270년 조정의 개경 환도에 반발해 봉기한 삼별초는 진도를 거쳐 제주로 옮겨 가 김통정의 지휘 아래 항파두리에 바깥은 흙, 안쪽은 돌로 쌓은 이중 성(외성 둘레 약 6km)을 세우고 항전했다. 1273년 김방경이 이끄는 고려·몽골 연합군에 성이 함락되었고, 이후 원은 탐라총관부를 두어 제주를 직접 다스렸다.

    출처: 위키백과 · 국가유산포털 · 참고 자료 · 영어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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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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